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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랑이 전하는 신선한 이야기

“살아있는 게 빛나야 의미가 있지요.”-제주 반딧불이 친환경 영농회 회장 김산현



살아야겠다, 살려야겠다!

“욕 많이 먹었습니다. 바닥에는 잡풀이 퍼렇게 자라고, 과일도 관행농에 비해 형편없이 열려있으니 관행농 하는 사람들이 와 보고 혀를 찼죠.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고..”

속 쓰렸을 기억을 허허, 웃음으로 날려버리는 사람. 반딧불이 친환경 영농회 김산현 회장이다.
유기농 감귤재배를 시작한지 6여 년.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처음 친환경 농법으로 감귤재배를 시작했을 때는 얘기치 못한 돌발 사태들로 힘든 고비도 많았다.

“농약을 칠 때는 신경도 안 썼던 해충들이 생기는 거예요. 심지어 관행에서는 볼 수도 없는 응애 같은 것들이 나타나는데, 약 한번만 치면 싹 사라지는 걸 이제는 미리 대비를 해야 하니까 힘들었죠. 응애 뿐만 아니라 뭐가 또 생길지 모르고..”

그러나 고비를 겪으면서도 그가 유기농 감귤재배를 고집한 것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농약 치다가 논에서 쓰러지는 사람들 몇 번이나 병원에 업어다 주다보니까, 아이고 이거 안 되겠구나,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요.”

그냥 흘려듣기에도 섬뜩한 말, ‘살아야겠다’. 그 순간 김산현 회장이 느꼈을 절박함이 고스란히 다가왔다. 그리고 이는 한 개인의 삶의 희구가 아니었다. 농사짓는 사람이 ‘살아야겠다’는 것은 자신이 지은 농산물을 먹는 사람들 또한 다 같이 살려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농협조차도 유기농 감귤재배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할 때 그는, 주위의 우려를 무릅쓰고 뜻을 같이 하는 농가들을 모아 반딧불이라는 친환경 영농회를 조직했다. 작목반 단위로 유통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았지만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는 못 할 일이 없었다.
현재 유기농 감귤 재배를 하는 농가가 13 곳, 준 반원까지 하면 20 농가를 넘는다. 조금씩 느는 추세다. ‘함께 살자’ 는 철학을 수긍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투박한 모양새, 숨 쉬는 감귤

김산현 회장을 따라 들어선 반딧불이 노지감귤 밭. 나무 마다 주렁주렁 맺힌 노란 귤이 꽃처럼 환하다. 손에 닿는 대로 귤 하나를 따서 껍질을 까는데, 향긋함과 풋풋함이 뒤섞인 신선한 향기에 침이 고인다. 얼른 입에 밀어 넣으니 탱글탱글한 과육이 혀끝에서 터지며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향기가 짙고 당도 높은 감귤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늦게 수확하는 것이 좋아요. 감귤은 나무에 오래 두면 둘수록 당도가 올라가거든요. 귤 배꼽 부분이 진한 담홍색 빛을 내며 오돌오돌 한 게 바로 완숙 감귤, 나무에서 충분히 익은 상태로 딴 거예요. 가끔 뒷면에 푸릇한 기운이 돌 경우에는 서늘한 곳에 신문지를 덮어 사나흘 정도 두면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아져요.”

평소 귤을 살 때, 푸른색이 돌면 어쩐지 덜 익은 것 같아 손이 잘 가지 않았는데 김산현 회장의 말에 따르면 오히려 그런 과일이 억지로 익혀 노화시키는(후숙) 과정을 거치지 않은 거라 더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거라고 한다.
그의 말을 들으며 먹고 난 감귤의 껍질을 무심히 손가락으로 비벼보는데, 약간 까슬한 것이 시중에서 흔히 사 먹는 귤과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자세히 살펴보니 표면이 거칠고 주근깨와 잡티도 많은 것이, 사람으로 치자면 바닷바람을 안고 사는 바닷가 아낙네 얼굴 같다. 나무에서 갓 따 낸 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물류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감귤 역시 모양새가 투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왁스코팅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식용이라고 해도 왁스 성분이 몸에 좋을 리 없죠. 겉보기나 보존성은 좋겠지만 공기와의 접촉이 차단되어 왁스코팅을 하는 순간부터 귤은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죽은 과일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반딧불이처럼 수확한 그대로 놔 둔 유기농 귤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서도 계속해서 숨을 쉬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혹여 습도가 낮아져 껍질이 마르더라도 알맹이는 촉촉하고 신선한 상태로 훌륭한 맛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죠.”

문득, 반질반질 매끈한 귤을 먹고 난 뒤면 크레파스나 양초를 만지고 난 듯 한 미끈함이 손에 남아 찝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매 번 보기에 좋아 보이는 귤을 더 선호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후숙이나 왁스코팅 같은 그릇 된 관행들은 모두 겉모양을 더 중시하는 잘못된 소비습관이 만들어낸, 우리들 스스로가 낳은 기형아가 아닐까. 입맛이 씁쓸하다.


살아 있는 교과서?!

반딧불이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귤은 모두 나무에서 갓 따온 그대로 상자에 들어가 소비자에게 전달되는데, 그 대부분의 과정이 모두 손으로 이루어진다.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유기농 감귤은 왁스코팅 작업을 하지 않아 조금만 상처가 나더라도 금방 다른 귤에게까지 여파를 미치기 때문에 심지어는 수확할 때 땅에만 떨어져도 그냥 버려버린다. 따라서, 상자 속에 들어간 귤은 고르고 골라 선발 된 최상의 제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상자 속에는 귤만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빈 공간 곳곳에 정직함과 넉넉한 인심이 푸짐하게 들어 앉아 있었다.

“우리는 김산현 회장님을 교과서라고 불러요. 반딧불이는 귤 포장 하나하나를 다 직접 손으로 하는데, 0.01g 이 모자라도 귤 하나를 더 채워 넣는 분이 김산현 회장님이거든요.”

반딧불이에서 경리와 사무를 보고 있는 강영선씨는 투정 섞인 목소리로 김산현 회장님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생물이기 때문에 수분이 빠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넘어갈 수도 있는데 절대 용납하는 법이 없단다. 그녀의 말에, ‘넘쳤으면 넘쳤지 모자라선 안 된다’ 며 박스 하나하나를 다 체크하는 김산현 회장의 모습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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