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라이프 행복 디자이너
충북 오창에서 바늘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는 '위대한 평민' 이애리님을 만났습니다.
에디터. 사진 / 한미애
"이애리의 바늘이야기...그리고 친환경의 삶..."
바늘이야기는 본사를 따로 둔 체인점이에요.
공방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고싶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에 연연하기 보다는
많은 이들에게 구태의연하고 진부하게 인식되어진 수공예문화를 좀 더 젊고 유쾌하게 바꿔주고 싶었어요.
바느질로 만들 수 있는 게 무한한데 사람들은 바느질이라면 연세드신 어머니들이
양말이나 깁던 가난한 시대의 저급문화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뜨개질 같은 경우는 좁고 길기만 하면 뭐든지 실이 될 수가 있어요
폐비닐을 모아 길게 잘라서 돗자리를 뜰 수도 있고 안입는 면티셔츠를 모아 엮으면 근사한 발판을 만들수도 있죠..
▲면티셔츠를 엮어 만든 발판 ▲폐비닐로 만든 뜨개실로 돗자리를 뜨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령공주 (もののけ ひめ: Mononoke Hime, The Princess Mononoke, 1997)의 배경이 되었던
야쿠시마 섬의 숲에는 조몬스키(繩文杉)라고 불리는 7200년된 삼나무가 있대요.
섬 사람들에게는 아주 신령스런 존재로 여겨지는 데,조몬스키와 야쿠시마 섬이 좋아서
서른아홉의 나이에 아내와 함께 섬에 들어가 63세로 일기를 마칠때까지 자연을 소중히 하며 살아간
야마오 산세이라는 시인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책도 있는데, [여기에 사는 즐거움, 야마오산세이 저, 이반 역, 도솔출판사,2001]
그 중에'고요함에 대하여'라는 시가 있어요.'
이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요함이다.
그 시인은 세상을 떠나서 집앞의 작은 배롱나무 덤불밑에 유해를 묻어달라고 했대요.
그래서 사람들이 왜 조몬스키가 있는 곳에 묻히지 않느냐고 물으니
‘마음을 열면 아무리 작은 나무덤불이라도 나에겐 조몬스키와 다름이 없다’라고 했대요.
부인은 아직 그 섬에 살고 있는데 그 부인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어요.
한참 젊은 나이에 도쿄에서 이런 시골로 이사하자는 남편이 싫지 않으셨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을 했대요
"내 손으로 개울물을 길어 쓰고 불을 지필 수 있는 이 집에서 사는게 좋아요."
저 또한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요즘 집들은 수도가 끊기고 전기가 나가고 도시가스 공급이 중단되면 망연자실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저는 그 상황이 참 무서워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게 다 끊어진다면 집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로 순식간에 전락해버리죠.
그래서 저는 ‘의식주’ 만큼은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은 거예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든 내가 직접 통제 할 수 있도로 준비해두는 것.
그래서 맥락에서 건축일도 배우고, 옷도 만들고, 농사도 배우고요.
이것은 단지 저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지만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라는게.
자기가 먹을것은 자기가 만들어내야 하고
입을 옷은 자기가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살 집도 직접 지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를 즐기는 삶...그리고 자유"
여름에 겨울을 기다리고
겨울에 여름을 기다리면 죽을 때까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겨울엔 겨울을 즐기고 봄엔 봄을 즐기고
지금, 여기, 현재 를 즐기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자신이 지금 있는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자꾸 다른 곳을 생각하면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죠.
현재 자기가 서있는 이 자리를 가장 즐겁고, 넓고, 안락한 곳으로 만드는 게 가장 행복해지는 지름길인 것 같아요.
자유...
20개월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고 공방을 운영하고 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어떻게 보면 옴쭉달싹 못하는 감옥일 수도 있잖아요.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나를 구속하고 옭아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을 제 마음속에서 무한히 넓게 만들면 이 안에서 나는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어요.
이 상황에서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만 생각하고 한계를 짓다 보면
이런 일상이 많이 힘들고 답답할 수 있는데,
내 마음속에서는 이 공간이 잠실 운동장보다 더 넓을 수 있거든요.
이 안에서 전혀 구속감을 느끼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어요.
이 안에서 나는 마음속의 자작나무 숲도 거닐수 있고, 알라스카에도 갈 수 있고,
노르딕니트 책을 보면서 아주 추운 아이슬랜드나 북유럽을 상상하고요.
또 20개월 아기를 키우면서 종종 얼른 커서 힘든 것이 덜어지길 바라지만
그것보다는 20개월에만 가능한 아기의 귀여운 모습들에 집중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너무 빨리 사라지는 모습들,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니까.
"여행..."
여행은 바쁠 때 가라는 말이 있잖아요
바쁠 때라는 건,
뭔가 굉장히 많이 얽혀있고 어떤 길로 어떻게 계속 달려야 할지, 멈춰야 될 지, 미처 돌아볼 새도 없을 때,
그걸 멈춰놓고 좀 더 멀리서 바라보기 위해 가는 거지요.
내 상태를 벗어나서 떨어져서 바라보면 명확히 보이잖아요.
저의 경우엔 그러기 위해서 가는 것같아요..
객관적인 입장에서 봐 지니까 조금 정리가 되어져요. 명료한 답이 나오고.
그런 여행이 있다면 친구들과 그저 즐기기 위해 가는 여행도 있고,
또 나중에 꺼내볼 좋은 기억들을 저장하러 가는 여행도 있겠죠.
가령 작년 2월의 홋카이도 여행처럼 한여름에 꺼내볼 차가운 자작나무 숲길말예요.^^
여자...그리고 혼자의 여행...
혼자 여행을 다니며 위험한 상황도 더러 있었죠. 요즘 들어서는 더 위험해지기도 했구요.
그렇지만 마음에 걸리는 모든 상황을 고려하다 보면 한 발짝도 집을 나설 수 없지 않겠어요?
못 가고 망설이고 가고 싶어하며 애태우기보다, 맘먹으면 무작정 떠나는 스타일이에요.
모든 상황과 걱정을 접어두고 일단 집을 나서면, 그 순간부터 마음이 홀가분해 지면서
어떤 상황이 닥치든 그 또한 이 여행의 일부분이 되겠지 라고 생각 되어 지고 그런 자신이 대견해 진다고 할까요.
여행을 떠나서 그 여행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는 재미도 있어요.
여러 가지 돌발상황에 부딪혔을 때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면서,
‘아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구나!’하고 내 자신을 겪어보게 되기도 하구요...
일상생활에서는 겪어 볼 수 없는 많은 상황들을 겪어 보게 되잖아요.
여러 가지 상황에 나를 놓아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보이게 되요.
여행지 소개 ...
많은 곳을 다녔고 또 소개하고 싶은 곳도 많지만 저만 그 중 세가지만 고르라면
훗카이도 자작나무 언덕
눈 내리는 홋카이도. 비에이의 언덕에서 스노우모빌을 타봐야 해요 ^^
눈은 펑펑 오고 은빛 자작나무길이 끝도 없는 거죠.
울고싶을 정도로 아름다워요.
▲2002년 2월, 비에이(홋카이도)
9월의 대천해수욕장 낙조
많이 알려졌는데 의외로 잘 못 보셨을 거예요.
9월의 낙조는 사람을 무아지경으로 만들어요.
왜 호접몽(胡蝶夢 : 장자(莊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에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하는
문구처럼 내가 바다인지 모래가 하늘인지 구름이 나인지 노을이 구름인지…
마구 뒤섞이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지요.
그때의 그 경험은 잊혀지지가 않아요.
태백의 자작나무 숲
추운 날씨를 좋아해서인지 추운지방에서 잘자라는 자작나무를 참 좋아해요.
그 이름도 예쁘고 한여름 자작나무 잎을 바람이 스치면’사사사사~’하는시원한 소리가 나죠.
우리나라 기후에는 잘 맞지 않아서인지 우리 나라에는 자작 나무 군락이 별로 없는데
태백에서 도계로 넘어가는 30번 국도변에 별로 크지 않은 규모의 자작나무숲이 있어요.
▲2011년 10월, 태백
도보여행 중 발견했는데 규모는 작지만 참 예쁜 숲이랍니다
"환경... 살아가는 동안 최대한은 지구에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가게에서 종이컵을 안쓰고머그컵을 쓴다든지
그런데 종이컵을 안쓰게 되고 머그컵을 쓰게 되면 세제를 쓰게 되잖아요.
종이컵을 쓰는 것과 세제를 쓰는 것이 어떤 것이 더 환경에 좋지 않은지
자세히 분석할 만큼까지의 적극성은 없더라도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지만
최대한 환경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노력해요.
살아가는 동안은 될수록 지구에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공방에서는 누구나 머그컵을 사용합니다. ▲ 친환경수세미(항균아크릴사로 만든 수세미로
컵을 씻으면 세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나눔...재화의 적절한 재배치"
저에게 ‘나눔’이라는 것은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퍼주기 좋아하는 헤픈 성격이기도 하지만
제 생각은...
재화의 적절한 재배치? 라고 생각해요.
제자리를 못 찾아서 엉뚱한 곳에 가서 쓰레기취급 당하고 있는 재화를
정말 있어야 할 자리에 돌려놔 주는 것 좋게 봐서 그게 나눔이 된 것이죠.
예를 들어 저는 부츠를 여러 개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 잘 신어지지 않는것도 있잖아요.
그런데 누군가는 부츠가 꼭 필요한데도 갖고 있지 못하는 사람도 있죠.
그러면 내가 신지 않아서 남아도는 부츠는 그 사람에게 가 있는 것이 훨씬 요긴하게 쓰이고 좋겠죠?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나눔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것을 가져서 기뻐할 사람에게 가는 것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생산된 무수히 많은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지 못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재화의 낭비인데 그것들이 제자리를 잘 찾아가면
그만큼 필요 없는 물건의 생산이 줄어들게 되고 기왕에 생산된 물건들은
제 용도에 맞게 소중하고도 알뜰하게 쓰이겠죠.
그것 또한 친환경아닐까요?
"우리의 농촌..."
지금 농촌은 매우 양극화 되어있는 거 같아요.
영세농민이 있는가 하면 또 엄청난 부농이 있어요.
빠른 정보력과 기술력으로 발 빠르게 돈이 되는 작물을 재배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농가가 있는가 하면
노인인구가 대부분인 마을에서 얼마 안 되는 농협 빚도 갚지 못하고 허덕이는 농가가 있고요.
귀농이 트랜드가 되고 젊은 인구가 농촌에 유입되는 현상이 좀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앞으로 빠르면 5년 후엔 저도 지리산 인근으로 갈 계획이예요.
앞서 말했듯 모든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 의식주의 자력생산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그 중 하나인 ‘식’을 생산하는 농촌이 소비만 하는 도시보다 더 소중하게 존중되지 않을까요?
도시사람들이 흔히 도시생활에 힘들어할 때"시골 가서 농사나 지어야지."라고 하잖아요.
농사를 조금이라도 지어본다면 그런 말 쉽게 할 수 없겠죠?
농촌에 대한 인식변화와 젊은 인구의 유입 외에도 농가의 환경도 좀 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국에서는 친환경으로 농사지어서 소규모로 파는 작은 마켓들도 많은데 그게 참 예뻐요.
재배하는 환경도 예쁘고 유통과정도 예쁘고 파는 가게도 예쁘죠.
예쁘다는 건 참 애매한 표현이지만, 우리나라 농촌, 유통환경, 시장의 모습은 참 예쁘지가 않아요.
예쁘지 않다는 건 모든 요소요소에 디자인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말안데요.
패키지 하나를 보더라도 일본이나 유럽등지의 농산물들은 정말 예쁘죠.
우리나라는 농업과 디자인의 결합이라는 과제를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아요.
감자박스가 예뻐서 뭐하느냐는 식이죠.
그렇지만 우리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 박찬욱감독)에 나오는 대사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요.
“뭐든지 예뻐야 되는 거야.”
"마지막으로..."
지금의 우리는 옷과 집과 음식이 누구의 손에서 생산되는 지도 모르는 채 돈만 가지고 살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돈이 그 가치를 잃는다면 어떻게 할까요?
돈에 담긴 사회적 약속이 사라져 그저 휴지조각이 된다면…
우리는 어디에 가서 음식을 구하고 옷을 구하고 살 집을 구할까요?
모든 문화적 혜택이 사라진 핵전쟁 이후의 폐허라던가 그런 극한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무얼 할 수 있나요? 금고에 쌓아둔 지폐로 불을 지펴 손이나 녹일 수 있나요?
쌓아둔 금덩이를 먹을 수 있나요?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짐승의 모습을 벗어나
사람의 존엄을 지키려면 적어도 세가지 중 하나는 스스로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의식주 중 한가지는 내 손으로 해결해보세요.
농사 짓기
옷 짓기
집 짓기
눈치 채셨나요? 위의 세 가지에는 모두 ‘짓다’라는 동사가 들어있어요.
밥도 옷도, 집도 모두 ‘짓는’거잖아요
‘짓다’는 사람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행위입니다. ‘짓는’ 즐거움과 소중함을 잊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